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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경성 창렬사 (鏡城 彰烈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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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진 작성일20-03-10 08:18 조회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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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경성 창렬사 (鏡城 彰烈祠)

 

   경력공파(經歷公派휘 겸 先祖의 6세손 이기수(李麒壽)와 이붕수(李鵬壽:1548~1593)형제가 임진왜란때 (鄭文孚:정문부의 전승기념비 "북관대첩비")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우고 옥탑평(玉塔平)전투에서 순절(殉節: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림)하여 형은 부제학(副提學:홍문관 정3), 아우는 지평(持平:5)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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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공파 48세손 이붕수는 자는 중항(仲恒). 아버지는 이팽년(李彭年)이며어머니는 여씨(呂氏)이다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장 가토[加藤淸正]의 병사가 관북(關北)으로 밀어닥쳐 여러 고을을 함락하고회령 사람인 국경인(鞠景仁등이 두 왕자와 재신(宰臣및 장리(長吏)를 사로잡아 항복하는 사태가 일어나자이 소식을 듣고 거사계획을 세우던 차에 북평사 정문부(鄭文孚)를 만나 강문우(姜文祐), 종성부사 정현룡(鄭見龍)과 함께 창의기병(倡義起兵)하여 정문부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별장이 되었다. 9월 부령을 수복하여 국경인 등의 목을 베고, 11월 길주 장평(長坪)에서 승리하고, 12월 쌍포(雙浦)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1593(선조 26) 1월 단천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적병이 후퇴남하하기 시작하자 이를 추격하여 옥탑평(玉塔坪)에서 싸우다가 적의 탄환에 맞아 전사하였다.

  1665(현종 6) 당시 함경도관찰사 민정중(閔鼎重)이 임진왜란 때에 충절을 다한 이 지방 인물들에 대하여 포상하여줄 것을 건의함에 1666년 사헌부지평에 추증되고경성 창렬사(彰烈祠)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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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붕수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함경북도병마평사(咸鏡北道兵馬評事정문부(鄭文孚)를 대장으로 추대하고별장(別將:용호영의 종2,또는 용호영 이외의 각 영의 정3,조선전기에는 정7)이 되어 부령(富寧)을 수복하고반역자 국경인(鞠景仁,선조의 아들(왕자)을 왜군에 넘겨줌)등을 처형하였다왜란 중 육지에서 처음으로 적군을 격퇴한 이 승리를 기리기 위해, 1709(숙종 35함경북도 길주(吉州임명리(臨溟里)에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가 세워졌다.

 

   이어 길주와 단천(端川등지에서도 승리하였고이듬해 패퇴하는 왜적을 추격하여 옥탑평(玉塔坪)에서 싸우다가 유탄(流彈)에 맞아 전사하였다. 1666(현종7) 사헌부지평(持平:5)에 追贈되었다가후에 사헌부감찰(監察:백관을 규찰하던 정6품 검사)에 贈職되었다함경북도 경성(鏡城)의 창렬사(彰烈祠)에 配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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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경북도 경성에는 창렬사 祠堂이 있고 경력공파 48세손인 이기수 이붕수 형제 두분의 위패가 배향되어 있으므로 북한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날이 오면 경력공파 후손들은 창렬사에 참배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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