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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안변 학포 백산사 (安邊 鶴浦 栢山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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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진 작성일20-03-10 08:22 조회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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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안변 학포 백산사 (安邊 鶴浦 栢山祠)

 

 



 

  李之온(이지온선조는 경력공파 52세손으로서 자는 자문(子聞), 호는 빈교(貧郊). 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이우(李瑀)이며어머니는 개령문씨(開寧文氏)로 현감을 지낸 문덕교(文德敎)의 딸이다.

 

  외할아버지에게 수학해 1626(인조 4) 문과에 급제했으나 당시의 권신과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아 파방(罷榜)되었다. 1633년 다시 응시하여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의병을 모집해 싸웠으며이듬 해에 성균관학유에 제수되었다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되자 사직하고 귀향했다가 1638년 고산도찰방(高山道察訪)에 재임했고, 2년 뒤 성균관전적, 1645년 형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을 지냈으며이어 병조좌랑에 임명되었다.

  그 뒤 용강현령으로 재직하면서 여러 가지 민폐를 척결했고당시 칙사가 이르러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 것을 능란한 지혜로 대처해 상급자들을 감동시켰는데이 일을 감사 이원(李愿)이 조정에 알려 1647년 특명으로 고원군수에 제수되었다.

  그 뒤 통례원상례·사헌부장령·남원부사·상의원정(尙衣院正제용감정(濟用監正등을 두루 역임하는 동안 두 차례 파직을 당했으며, 1655(효종 6) 삼척부사, 1660(현종 1) 밀양부사, 1665년 종성부사 등의 외직을 거쳐 한성부우윤에 제수되었는데시사(時事)가 뜻에 거슬려 사직하려 했지만송시열(宋時烈)의 적극적인 권유로 그의 뜻을 따랐다.

 

  1669년 형조참판 겸 동지중추부사·의금부도사·한성부좌윤 등에 임명되었다. 1671년 흉년이 들자 한성부우윤으로 재직하면서 진제도감(賑濟都監)의 임시직을 겸임하였다.

그 해 5월에 종묘제헌관(宗廟祭獻官)으로 파견되어 제사를 치르고 난 뒤 병으로 별세하였다. 1704(숙종 30) 강원도 안변군 백산사(柏山祠)에 配享되었다저서로는 빈교문집(貧郊文集)』 4권 2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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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북한땅인 강원도 안변에는 백산사 祠堂이 있고 경력공파 52세손인 李之온 先祖의 위패가 배향되어 있으므로 북한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날이 오면 경력공파 후손들은 백산사에 참배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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