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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 와 이화일 분대장(경력공5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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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9-26 13:27 조회1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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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보(경오보)2권 65 페이지 

보명 : 권렬  자 : 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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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범도 / 독립운동가.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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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에 들어서 만주 독립군부대의 국내 진입 무장활동이 활발해지자, 국경의 일본군 수비대가 수세에 몰렸다. 그해 6월 4일 삼둔자(三屯子)싸움에서 일본군 남양수비대(南陽守備隊)가 패하자, 함북 나남에 주둔한 일본군 제19사단은 야스카와[安川二郞] 소좌가 인솔한 1개 대대로 월강추격대대(越江追擊大隊)를 편성하였다. 독립군을 추격하여 간도로 들어간 추격대대는, 6월 7일 안산(安山) 후방고지에서 독립군의 공격을 받아 상당한 타격을 입었으나 허룽현 봉오동까지 독립군을 추격하였다. 당시 봉오동에는 독립군이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라는 연합부대를 편성, 주둔하고 있었다.

대한북로독군부는 부장(府長) 최진동(崔振東)과 부관(副官) 안무(安武)가 정치를, 북로제1군사령부 부장(部長) 홍범도(洪範圖)가 군사를 맡았으며, 봉오동 골짜기와 주변 산에는 약 700~900명의 독립군이 집결하였다. 일본군 1개 대대가 독립군을 추격하여 봉오동에 접근한다는 보고를 받은 홍범도는 봉오골의 주민을 대피시키고 포위망을 구성한 다음, 제2중대 제3소대 제1분대장 이화일(李化日)에게 고려령(高麗嶺)에 대기하여 일본군을 유인해오도록 하였다. 고려령에서 일본군 전위중대(前衛中隊)가 독립군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였지만, 본대는 대오를 정비하여 봉오동 골짜기의 독립군 포위망 속으로 들어왔다. 홍범도의 공격 명령에 따라 매복한 독립군이 3면에서 집중사격을 가하자, 일본군은 3시간 가량 응사하다가 막대한 희생자를 내고 후퇴하였다. 강상모(姜尙模)가 지휘한 제2중대는 도주하는 일본군을 추격하여 또다시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이 싸움에서 일본군은 전사 157명, 중상 200여 명, 경상 100여 명이었지만, 독립군측의 피해는 전사 4명, 중상 2명으로 경미하였다. 이로써 독립군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와 동포들의 사기가 크게 앙양되었고, 독립군의 군세가 더욱 증강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이 싸움의 참패에 충격받은 일본군은 관동군까지 동원하는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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